에피쿠로스 ( Έπίκουρος , Epicurus )
생몰 : 기원전 341년 ~ 270년
학파 : 에피쿠로스 학파
에피쿠로스는 쾌락주의 철학과 마음의 평온을 강조하는 것으로 유명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입니다. 그의 주요 목표는 행복과 평온한 삶을 실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쾌락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으며, 이를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 부합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그의 철학은 그는 비슷한 시기의 주요 쾌락주의 학파인 키레네 학파와는 또 다른 성격의 새로운 쾌락주의를 주장하여 이를 따르는 철학자 집단들과 함께 에피쿠로스 학파를 이루게 됩니다.
- 에피쿠로스의 생애와 그의 철학적 맥락: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341년에 아테네의 식민지였던 사모스에서 태어나 270년까지 살았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플라톤 학파와 데모크리토스의 제자인 테오스의 나우시파네스 (Nausiphanes) 에게서 공부하였습니다. 그는 아테네로 돌아와 '정원’이라는 철학 공동체를 세우고, 여기서 35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습으며 그 과정에서 행복과 평온 추구에 중점을 둔 철학을 장려하는 에피쿠로스 학파를 설립했습니다.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은 고대 그리스의 지적, 철학적 동요의 시기에 등장하여 윤리와 웰빙의 본질에 대한 독특한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 쾌락주의: 에피쿠로스 철학의 중심 교리: 에피쿠로스 철학의 중심에는 쾌락이 최고의 선이며 인간 존재의 궁극적 목표라고 주장하는 쾌락주의 원칙이 있습니다. 그러나 에피쿠로스는 다양한 유형의 쾌락을 구별하여 전반적인 행복에 기여하는 세련되고 지속적인 형태의 쾌락 추구를 옹호했습니다. 쾌락주의는 감각적 방종보다 절제, 자제력, 지적 쾌락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또한,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쾌락주의를 중심으로 한 윤리학과 자연주의 철학을 포함합니다. 그는 쾌락을 고통의 부재로 정의하고, 이를 통해 영혼의 평온함을 추구했습니다. 그의 철학은 개인이 절제되고 단순하며 지적인 추구의 삶을 살아 이러한 행복 상태에 도달하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 아타락시아(Ataraxia): 평온함과 혼란으로부터의 자유 추구: 에피쿠로스 철학의 핵심에는 육체적, 정신적 장애가 없는 상태에서 발생하는 아타락시아(ataraxia), 즉 마음의 평온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진정한 행복과 성취는 일상생활의 불안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내면의 평화와 만족의 상태를 얻는 데서 나온다고 가르쳤습니다. 아타락시아를 배양함으로써 개인은 심오한 행복감과 조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 미덕 윤리: 우수성과 도덕적 고결함 함양: 즐거움과 평온함 외에도 에피쿠로스는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미덕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쾌락주의적 미덕 윤리는 도덕적 성실성과 개인적 성장에 기여하는 지혜, 용기, 절제와 같은 자질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둡니다. 에피쿠로스는 자연에 따라 생활하고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 즉 번영하는 삶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덕스러운 행동이 필수적이라고 믿었습니다. 또한, 에피쿠로스는 행복을 인생의 최고의 선이나 목표로 보았으며, 행복은 고통이 없고 영혼의 평온함으로 정의했습니다. 그는 쾌락과 고통을 행위의 도덕적 척도로 보고, 죽음을 몸과 영혼의 종말로 여겨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 자연 철학: 에피쿠로스는 우주가 무한하고 영원하며, 모든 현상은 궁극적으로 원자들의 움직임과 상호작용으로부터 나온다고 가르쳤습니다. 그의 자연철학은 원자론적 유물론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는 현대 과학의 중요한 개념들을 예견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데모크리토스의 제자들을 통해 배운 적이 있었으므로, 이러한 원자론적 자연철학사고는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에피쿠로스 철학에서 우정의 중요성: 우정은 행복과 행복에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에피쿠로스 철학에서 중심 위치를 차지합니다. 에피쿠로스는 상호 신뢰, 존중, 가치 공유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우정을 지지와 정서적 성취의 원천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의미 있는 관계가 소속감에 기여하고 삶의 즐거움에 대한 더 큰 감사를 키워준다고 믿었습니다.
- 현대 담론에서 에피쿠로스주의의 현대적 해석과 관련성: 에피쿠로스주의는 현대에도 계속해서 반향을 일으키며 행복 추구와 잘 사는 기술에 대한 귀중한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에피쿠로스주의를 방종과 쾌락주의적 과잉과 연관시킬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절제, 자기 훈련, 내면의 평화 배양을 강조하는 것이 가치 있다고 봅니다. 에피쿠로스 철학에 대한 현대적 해석은 긍정 심리학, 마음챙김 실천, 삶의 만족 추구와 같은 분야에서의 관련성을 탐구합니다.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을 재검토함으로써 우리는 현대 세계의 행복과 성취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적 관점을 감안했을 때, 신에 대한 그의 태도는 무신론에 가깝다고 쉽게 예단할 수 있지만, 그의 원자론적 사상의 근원인 데모크리토스의 후예들과는 조금 다르게, 그는 신의 존재 자체는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신이 불멸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했고, 세상 모든 행복의 집합체인듯하게 생각했습니다. 다만, 그 신이 우주 만물의 운행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사람들의 영혼조차 모두 원자로 구성된 것이며, 사람이 죽은 뒤 영혼은 다시 조그만 원자단위로 부서져 흩어질 뿐, 천국이나 지옥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에 성행했던 '신탁' 같은 예언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헛소리이고, 그것이 어쩌다 맞아떨어진다고 해도 그것은 잘 짜여진 우연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에피쿠로스의 죽음과 신성에 대한 짤막한 사고들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이유
우리가 살아 있을 때는 죽음이 우리 곁에 와 있지 않고, 죽음이 우리 곁에 와 있을 때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살아 있는 자들과도 관계가 없고 죽은 자들과도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살아 있는 자들에게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고, 죽은 자들은 그들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과 악에 대한 역설
신은 악을 막을 의지는 있지만, 능력이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전능하지 않은 것이다.
악을 막을 능력은 있는데 의지가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스스로 악한 것이다.
악을 막을 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이 세상의 악은 어디에 기인한 것인가?
악을 막을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왜 그를 신이라 불러야 하는가?
로마의 수사학자 락탄티우스는 위의 역설에 대해 본인의 서적에서 "선은 악의 반대 개념이며, 따라서 악을 제거하면 선도 똑같이 없어지며 (정의할 수조차 없음) 인간에게는 어떠한 덕 (선) 의 흔적도 남지 않을 것인데, 진정한 덕의 본질은 악의 괴로움을 견디고 극복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라고 역설을 논파했습니다.
'철학적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피쿠로스의 또 하나의 가족 - 메트로도로스 (0) | 2024.04.25 |
---|---|
예술을 사랑한 쾌락주의자 - 필로데모스 (0) | 2024.04.25 |
쾌락도 공유가 중요하다! - 안니케리스 (0) | 2024.04.19 |
교양을 잃는 것보다 차라리 거지가 되겠다. 그러나 수업료는 줘! - 아리스티포스 (0) | 2024.04.15 |
헬레니즘 : 소 소크라테스 학파 : 에피쿠로스 학파 (0) | 2024.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