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프사쿠스의 메트로도로스 ( Μητρόδωρος Λαμψακηνός , Metrodorus of Lampsacus )
생몰 : 기원전 331년 ~ 278년
학파 : 에피쿠로스 학파
고대의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중심지인 헬레스폰트 (다르다넬스 해협 주변지역) 의 해안도시 람프사쿠스 (지금의 터키 차나칼레) 에서 태어난 메트로도로스는 쾌락주의 및 물질주의 철학에 기여한 것이 많지만, 그 이외에도 개인적인 인간관계 역시 많은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입니다. 그의 즐거움, 행복, 만족스러운 삶의 추구에 대한 가르침을 탐구하고 그의 일생의 동반자라 할 수 있는 에피쿠로스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알아보도록 합시다.
- 메트로도로스 소개와 그의 철학적 맥락: 메트로도로스(Metrodorus)는 기원전 4세기에 살았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입니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키레네 학파의 회원이기도 했다고 하며, 에피쿠로스의 수제자이자 제일 가까운 동료였습니다. 메트로도로스의 철학은 쾌락주의와 물질주의의 요소를 결합하여 쾌락 추구와 자연 세계에 대한 이해에 중점을 둡니다. 그의 저술은 후대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쾌락주의적, 유물론적 사고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 쾌락주의: 메트로도로스의 최고선으로서의 쾌락 수용: 메트로도로스 철학의 핵심에는 쾌락이 최고의 선이며 인간 존재의 궁극적 목표라고 주장하는 쾌락주의 원칙이 있습니다. 그는 즐거움 추구가 행복과 성취로 이어지며 개인은 고통과 불편을 최소화하면서 즐거움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그는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 현명한 선택과 절제를 통해 즐거움의 삶을 가꾸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 유물론: 현실의 본질에 대한 메트로도로스의 견해: 그의 쾌락주의 원칙 외에도 메트로도로스는 우주가 물질적 물질과 물리적 과정으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가정하는 물질주의적 세계관을 옹호했습니다. 그는 자연 현상에 대한 초자연적 설명을 거부하고 물질적 원인과 원리의 관점에서 세상을 설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메트로도로스의 유물론은 후기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과학적 사고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 윤리학: 메트로도로스 철학의 도덕적 틀: 메트로도로스의 윤리적 틀은 쾌락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원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쾌락 추구와 고통 회피를 인간 행동의 기본 원칙으로 강조합니다. 그는 개인이 자신의 행복과 복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이익도 고려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윤리는 개인이 자신과 타인의 즐거움을 극대화하고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절제, 자제 및 고결한 삶을 장려합니다.
- 행복과 좋은 삶: 메트로도로스의 윤리 원칙: 메트로도로스의 철학은 행복의 본질과 좋은 삶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며, 그는 오히려 스승인 에피쿠로스에 비해서 더욱 관능적인 시각의 행복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완벽한 행복이란 완벽하게 잘 구성된 몸을 가지고 있는 것, 그리고 또한 그 몸을 항상 그 상태로 유지시켜야 함을 알고 있는 것, 그 과정에서 복부 (배) 가 행복한 삶과 관련된 모든 것의 시험이자 척도라고 주장했습니다.
- 메트로도로스 철학의 유산과 영향: 메트로도로스의 저작물은 대부분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의 사상은 고대 그리스 철학의 발전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쾌락주의와 유물론의 종합은 후기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철학적 사고의 진화에 기여했습니다. 즐거움, 행복, 윤리적 삶에 대한 메트로도로스의 강조는 윤리, 심리학, 의미 있는 삶의 추구에 대한 현대 담론에서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메트로도로스와 에피쿠로스와의 관계는 사실상 가족에 가까운 관계로서, 그는 에피쿠로스의 제자로 시작했지만, 자신의 거의 모든 일가족을 에피쿠로스 학파의 정원에 편입시켰고, 수제자가 된 이후부터는 거의 평생을 에피쿠로스 옆에서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승인 에피쿠로스보다도 먼저 죽었지만, 만약 에피쿠로스보다 나중 죽었다면, 아마도 에피쿠로스는 자신의 후계자로 메트로도로스를 세웠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메트로도로스의 주변인들과 에피쿠로스와의 이상한 연관관계
같은 이름에 같은 지방에서 태어난 철학자 메트로도로스가 기원전 5세기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유명한 철학자였던 아낙사고라스의 절친한 친구로 유명한 에우헤메리즘 사상으로 유명했던 철학자였습니다.
즉, 선배 메트로도로스는 당대 유명한 철학자 아낙사고라스의 절친이었고, 이 글에서 다루는 후배 메트로도로스는 학파의 수장 에피쿠로스의 절친이었던 이상한 데자뷰가 세기에 걸쳐 벌어진 것입니다.
메트로도로스의 아버지 이름은 티모크라테스로 알려져 있고, 메트로도로스의 동생 이름도 티모크라테스 였습니다. 이 동생 티모크라테스는 원래 형을 따라 에피쿠로스 학파에 가입하지만, 에피쿠로스와 언쟁을 한번 벌인 후 학파를 나가서 오히려 일평생 에피쿠로스를 비방하며 살았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죽을 때 유언으로 자신의 아이들을 메트로도로스의 매부 (메트로도로스의 여동생이 바티스이고, 그 남편인 이도메네우스) 에게 양육을 맡기고 죽었습니다. 참고로 바티스나 이도메네우스는 모두 에피쿠로스 학파 사람이고, 이도메네우스는 에피쿠로스의 절친이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해봤을 때, 사실상 에피쿠로스의 정원 내에서 메트로도로스는 단순한 수제자가 아니라, 2인자나 대리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그리고 사실상 에피쿠로스의 또하나의 가족으로 인정받았다고 유추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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