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베의 크라테스 ( Κράτης ὁ Θηβαῖος , Crates of Thebes )
생몰 : 기원전 365년 ~ 285년
학파 : 키니코스 학파
테베의 크라테스는 기원전 365년경 테베에서 태어나 기원전 285년경에 사망한 고대 그리스의 키니코스 학파 철학자입니다. 그는 시노페의 디오게네스의 주요 제자이자 마로네이아의 히파르키아와 결혼하여 같은 방식으로 살았습니다. 크라테스는 자신의 재산을 포기하고 아테네 거리에서 빈곤한 삶을 살았으며, 아테네 시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는 스토아 학파의 창시자인 키티온의 제논의 스승으로도 기억됩니다.
- 크라테스의 삶: 크라테스는 고대 그리스 테베 출신의 철학자로, 그의 삶과 철학은 많은 사람들에게 무소유에 대한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는 소박하지만, 지혜롭고 진중한 성격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삶의 의미와 목적을 탐구하면서 인류에게 깊은 통찰력을 제공했습니다.
- 견유철학자로써의 삶: 크라테스는 키니코스 철학의 주요 원칙을 따랐으며, 그의 철학은 단순함, 자유, 그리고 자연스러움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물질적 소유를 중요시하지 않았으며, 인간의 본성에 더 가까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후대에 스토아 학파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그의 스승이었던 시노페의 디오게네스를 존경했고, 그 방식의 삶을 살았지만, 스승보다는 다소 온화한 견유주의를 내세웠습니다.
- 사치에 대한 배격: 그는 사치가 도시의 소요와 반란의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하였고, 따라서 사람들에게 식사에 렌즈콩 (유럽 콩의 일종) 외에는 어떤 것도 선호하지 말라고 다소 농담섞인 조언을 했습니다. 이 농담은 나중에 극도로 산만한 구성의 미식가 책으로 유명한 아테나이오스의 Deipnosophistae (미식가: 식사에 정통한 사람) 의 4권에서처럼 한 무리의 견유학파가 식사를 위해 둘러 앉아서 렌즈콩 수프를 코스로 제공하는 것처럼 많은 풍자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크라테스는 그리스 테베에서 태어났고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는 그의 전성기를 기원전 328년부터 기원전 325년 사이 (제 113 올림피아드)로 기술하였습니다. 아스콘두스 (Ascondus) 의 아들로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지만, 아테네에서 키니코스 학파 철학자로서 빈곤한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모두 아테네의 길거리에 버렸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 던지면서 ‘크라테스는, 나 크라테스를 해방하노라!’ 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꽤 다양한 일화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일화는, 거지왕에 관한 비극 '텔레포스' 를 본 것이, 전 재산을 테베 시민에게 주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장수한 나이 (기원전 285년경) 에 사망하여 보이오티아(Boeotia) 에 묻혔다고 전해집니다. 다소 불교적이기까지 한 크라테스의 가르침은 키니코스 학파의 이상 국가에 대한 기술을 포함하여, 일부만이 여러 저술에 단편적으로 산재해 남아있을 뿐입니다.
테베의 크라테스가 생각한 견유학파 철학자들의 위상
포도주처럼 어두운 '투포스'(Tuphos) 한가운데에 '페라'(Pera) 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아름답고 풍요롭고 불결하지만, 사방이 꽉차있어 아무 것도 가진것이 없고,
어리석은 기생충도 그곳으로 항해할 수 없으며
창녀의 엉덩이를 좋아하는 바람둥이도 마찬가지로 갈 수 없는 그곳은
백리향, 마늘, 무화과, 빵을 생산하므로 시민들이 서로 전쟁을 벌이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들은 현금이나 명성을 얻기 위해 무기를 소유하지도 않습니다.
*투포스(τῦфος) : 고대 그리스어로 자욱한 안개, 연기 등을 나타내며, 대부분의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 혼란상태를 빗댄 표현입니다.
* 페라 : 견유학파 철학자들은 종종 텅빈 지갑을 상징적으로 몸에 지니고 있었는데, 이를 페라 라고 합니다.
따라서 위의 싯구는 자욱한 안개처럼 혼란한 사람들의 마음을 견유학파 철학자들이 마치 등대가 있는 섬처럼 인도하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히파르키아와의 소설같은 결혼
크라테스 본인도 상당히 부유한 집안의 자식이었으나, 시노페의 디오게네스를 만나고 감화되어 견유학파의 삶을 살게 된 케이스입니다만, 그와 결혼한 히파르키아 역시 마로네이아 지방에서 손꼽히는 명문가 집안의 여식이었습니다.
부유한 집안에다 아름답기까지 한 여인 히파르키아에게 마로네이아의 잘생기고 돈 많은 청년들이 청혼하러 줄을 선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키니코스학파의 철학자 크라테스의 이야기를 듣고 직접 그가 사는 모습을 보고 난 후 이 늙고 볼품없는 철학자에 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그녀의 부모는 극구 딸을 말렸고, 급기야 크라테스를 찾아가 딸을 설득해달라고 부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부모의 부탁을 받은 크라테스는 그녀를 설득하려 했지만 아무리 설득해도 그녀는 요지부동에 일편단심이었습니다.
결국, 크라테스는 마지막으로 그의 누더기 옷을 훌러덩 벗어버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게 네가 결혼하고 싶어하는 신랑의 모습이다. 그리고 또한 이게 내가 가진 전 재산이다. 앞으로 나와 살려면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 그럴 수 있겠는가?’
당연히 그녀는 그를 선택했고, 크라테스의 말처럼 평생을 그의 옆에서 그처럼 누더기로 살았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의 일문일답
크라테스의 스승인 디오게네스가 그러했듯이, 크라테스 역시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다소 허무한 일문일답을 나눈 바 있습니다. 당연히 이번에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민간에 명성이 자자했던 크라테스를 찾아와서 물어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테베를 정복하려다 보니 내가 본의아니게 당신의 도시인 테베를 부수고 말았소. 내가 이 도시를 다시 재건해 주기를 바라시오?"
그러자 크라테스가 허무하게 대답합니다.
"아니오. 그럴 필요 없소. 어차피 건설해봤자 또 다른 알렉산드로스가 와서 파괴해버릴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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