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노페의 디오게네스 ( Διογένης ὁ Σινωπεύς , Diogenes of Sinope )
생몰 : 기원전 412년 (추정) ~ 323년
학파 : 키니코스 학파
시노페의 디오게네스는 약, 기원전 412년에서 323년 사이에 살았던 고대 그리스의 키니코스 학파 (견유학파) 철학자로, 정직한 사람을 찾기 위해 등불을 들고 아테네 시민들의 얼굴을 비추며 다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예의"라는 개념을 거짓으로 여기고, 모든 상황에서 완전한 진실만을 말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급진적인 생활 방식과 파격적인 가르침으로 유명한 전설적인 고대 그리스 철학자 시노페의 디오게네스의 냉소주의, 사회 규범 거부, 미덕 추구에 대한 그의 원칙을 탐구해 봅시다.
- 시노페의 디오게네스 소개: 견유학파 철학자의 삶과 전설 시노페의 디오게네스는 기원전 4세기에 살았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였으며 견유주의의 가장 상징적인 인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기이한 행동과 급진적인 생활방식으로 유명한 디오게네스는 미덕과 진정성의 삶을 위해 사회적 규범과 물질적 소유를 거부했습니다. 남아 있는 작품이 제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전설과 가르침은 계속해서 반성과 감탄을 불러일으킵니다.
- 냉소주의: 디오게네스의 기본 원리와 철학적 신념 디오게네스가 예시한 냉소주의는 전통적인 가치, 사회적 규범, 물질주의에 도전하는 철학적 운동입니다. 디오게네스는 진정한 행복과 성취는 미덕과 단순함을 추구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자연에 따라 살고, 사회적 기대를 거부하며, 급진적인 정직과 진정성의 삶을 포용할 것을 옹호했습니다. 디오게네스는 개인적인 우수성을 중요시하고, 사회적 가치와 관습을 거부하는 자급자족을 추구했습니다. 그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내 햇빛을 가리지 말라"고 요청하기도 했으며, 그의 철학은 많은 이야기와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 급진적인 삶: 디오게네스의 파격적인 생활방식과 가치관 디오게네스는 물질적 소유와 사회적 안락함을 피하면서 파격적이고 미니멀한 생활 방식을 살았습니다. 그는 아테네 시장의 와인통에 살면서 물질적 부를 경멸하고 세상 재화에 대한 애착을 드러낸 것으로 유명합니다. 디오게네스는 자유와 내면의 평화를 얻는 수단으로 가난, 단순함, 자급자족을 받아들였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디오게네스는 자제력, 개인적 탁월함 (그리스어로 'arete:아레테’, 다른말로 '덕’) 의 중요성, 그리고 개인 소유물과 사회적 지위와 같이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거부하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념에 대해 매우 열정적이어서 아테네 시장에서 공개적으로 그러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 미덕 윤리: 디오게네스의 도덕적 성실성과 진정성에 대한 강조 디오게네스 철학의 핵심에는 도덕적 탁월성과 진정성의 함양을 강조하는 덕 윤리가 있습니다. 그는 진정한 행복과 성취는 정직, 용기, 자기 훈련을 특징으로 하는 미덕의 삶에서 비롯된다고 믿었습니다. 디오게네스는 위선과 가식을 거부하고 삶의 모든 측면에서 철저한 정직과 성실성을 옹호했습니다.
- 디오게네스 철학의 유산: 현대 사상에 미치는 영향과 타당성 디오게네스의 작품이 제한적으로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철학적 유산은 윤리, 진정성 및 반문화 운동에 대한 현대 담론에서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그의 사회적 규범 거부, 단순성에 대한 강조, 미덕 추구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존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고 더 큰 진실성과 진실성을 갖고 살아가도록 영감을 주었습니다. 디오게네스의 가르침은 자신의 원칙에 따라 생활하고 철저한 정직과 미덕의 삶을 포용하는 것의 중요성을 시대를 초월한 일깨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디오게네스는 시노페에서 태어나 화폐를 변조한 혐의로 추방당한 후 아테네로 이주했습니다. 그는 아테네의 아고라에서 대형 와인통에서 생활하며, 소유물 없이 자선이나 구걸로 생활했습니다. 그는 한때 소유하고 있던 컵마저도 버렸는데, 손으로 물을 마시는 소년을 보고 컵조차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디오게네스는 키니코스 학파 철학의 대표적 인물로, 스토아 학파의 자급자족과 사치의 거부라는 주제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안티스테네스에게서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삶과 철학은 개인적인 예시를 통해 견유학파 철학을 전달했습니다. 또한, 그의 추종자들은 도덕의 감시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가치와 믿음의 허위성을 폭로하고 사람들을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삶으로 되돌아가도록 촉구했습니다
시노페의 디오게네스에 관한 일화들
시노페의 디오게네스는 일탈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괴팍한 일화들을 후세에 전하고 있습니다.
몇가지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가장 유명한 알렉산드로스 대왕과의 일화
이미 디오게네스의 명성은 아테네에 자자해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디오게네스를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 때 디오게네스는 술통 앞 양지 바른 곳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 : "안녕하신가? 디오게네스. 짐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오."
디오게네스 : "나로 말하자면 디오게네스, 개 (dog) 지."
알렉산드로스 : "그대는 내가 무섭지 않은가?"
디오게네스 : "당신은 스스로를 뭐라 생각하나? 좋은 것? 아님 나쁜 것?"
알렉산드로스 : "물론 좋은 것이지."
디오게네스 : "세상 누가 좋은 것을 무서워하겠소?"
알렉산드로스 : "무엇이든지 바라는 걸 나에게 말해 보라."
디오게네스 : "일광욕에 방해되니 햇빛을 가리지 말아주시오"
부하들이 무엄한 저 자를 당장 처형해야 한다고 나서자 알렉산드로스는 그들을 저지하며 말했다.
"짐이 만약 알렉산드로스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스승인 안티스테네스에게 스승이 되어주길 청하며,
디오게네스 :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안티스테네스 : "난 제자를 두지 않네."
이 실랑이가 며칠째 계속되어 안티스테네스가 화가 나서 지팡이를 들고 치려고 하자,
디오게네스가 오히려 지팡이 앞에 머리를 들이밀면서,
"치십시오. 뭔가 확실한 가르침을 주기 전까진 저를 쫒을 수 있을만큼 딱딱한 나무를 찾기는 어려우실 겁니다."
결국 후에 그는 안티스테네스의 가장 확고한 수제자가 되었다.
한번은 디오게네스가 해적들에게 잡혀 노예로 전시되어 팔려갈 처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해적들이 다른 노예들에게 하듯이 그를 하대하고, 음식을 너무 성의없게 주자,
디오게네스 : "너희는 참 어리석구나. 곧 팔려갈 돼지나 양에게는 먹을 것을 충분히 챙겨주어서 살찌고 탐스럽게 만들어 가치를 올리면서도, 동물 중에 가장 탁월한 인간에게는 좋지도 않은 음식을 그나마 제대로 주지도 않아 피골이 상접하게 만들어 전보다 가치가 더 떨어지게 만드니 말이야."
이후로 당분간 그는 괜찮은 음식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수많은 부자들이 해적에게서 노예를 사려고 모였을 때, 해적 노예상이 디오게네스를 부자들에게 사라고 소개하며 디오게네스에게 묻습니다.
노예상 : "너는 어떤 일을 잘 할 수 있나?"
디오게네스 : "난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을 잘합니다."
얼떨떨한 노예상을 무시하고, 디오게네스가 다시 외칩니다.
디오게네스 : "이 중에 누가 자기 자신을 위해 자신의 주인될 사람을 사려는 사람 있는가?"
당연히 아무도 나서지 않았는데, 디오게네스가 보라색 장식 (귀족이나 상급정치가의 상징) 을 달고 있는 크세니아데스를 직접 지목하며, "너가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 라고 하며 자기를 사라고 종용합니다.
크세니아데스는 황당하면서도 그의 담대함에 이끌려서 디오게네스를 사게 됩니다.
이에 디오니게스가 크세니아데스에게 말합니다.
디오니게스 : "비록 내가 노예일지라도 내가 먼저 당신을 선택하여 스스로 배의 키잡이가 되었으니 당신은 나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내가 노예라 할지라도 배에 탄 이상 키잡이가 하는 말을 따라야 육지에 닿을 수 있을 것이오."
즉, 대단한 내가 당신의 인생 길잡이가 되주겠으니 나를 따르라는 말이죠.
크세니아데스는 디오게네스의 이런 자세에 반해 아이들의 가정교사를 맡겼습니다. 아이들은 훌륭하게 자랐고, 나중에 디오게네스가 죽었을 때, 그 아이들이 장사를 치러주었습니다.
디오게네스가 죽기 직전에 크세니아데스가 어떻게 장사를 치뤄드릴지를 묻자 디오게네스는 얼굴을 아래로 땅을 보게 하여 묻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고대 그리스에서도 관습적으로 얼굴을 하늘을 보는 방향으로 묻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크세니아데스가 왜 그러냐고 반문하자,
디오게네스 : "난 워낙 잘때 잘 뒤척이기 때문에, 어차피 좀만 지나면 다시 반대방향으로 보고 있을 것이다."
노모스 (Nomos) 적인 관습체계나 예절을 워낙 경멸했던 그이기에 이런 위트를 통해서도 관습적인 행위를 질타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토론하고 있는 아고라 광장에서 스스로 자위를 하며...
“아아, 이렇게 비비기만 하는 걸로 쾌락이 찾아오듯 배꼽을 문질러 배고픔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 필리포스가 그에게 물었다.
필리포스 : "그대는 도대체 누구인가?"
디오게네스 : "나는 그대 탐욕의 정찰병이오."
플라톤과의 설전들... (플라톤은 그와 사상적 라이벌이었습니다.)
언젠가 플라톤이 이데아론을 설파하며 '책상다움'과 '술잔다움'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자,
"내 눈엔 책상과 술잔은 보이지만, 책상다움이라든지 술잔다움은 전혀 안 보이는데?"
플라톤의 강의를 그는 ‘시간 낭비’라고 봤다.
플라톤이 인간을 가리켜 '깃털이 없는 두 발 동물'이라 하여 청중들의 박수를 받자,
디오게네스는 닭 한 마리를 붙잡아 깃털을 다 뽑은 다음 그것을 플라톤의 강의실로 가지고 가서
"플라톤 당신이 말한 인간이 바로 여기 있다네."
그러자 플라톤이 ‘인간’의 정의에 "넓고 평평한 손발톱이 달린" 을 첨가할 수 밖에 없었다.
디오게네스가 상추를 씻고 있는 것을 본 플라톤이 말했다.
“자네가 디오니시오스 왕을 알현하기만 했어도, 이렇게 상추를 씻고 있을 필요는 없었을 텐데.”
디오게네스가 대답했다.
“당신이 나처럼 상추를 씻었더라면, 굳이 디오니시오스 왕을 찾아가서 알현할 필요는 없었을 거요.”
플라톤은 디오게네스를 ‘미친 소크라테스’라 불렀고, 디오게네스는 플라톤을 '위선자' 로 여겼다.
'철학적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자였지만 금욕의 삶을 살은 내적평화의 달인 - 키티온의 제논 (0) | 2024.05.05 |
---|---|
단순함과 자연스러움을 통한 무소유의 삶 - 테베의 크라테스 (1) | 2024.05.03 |
고대 그리스 금욕주의의 전통을 만들다 - 안티스테네스 (0) | 2024.04.29 |
헬레니즘 : 소 소크라테스 학파 : 스토아 학파 (Stoicism) (0) | 2024.04.27 |
헬레니즘 : 소 소크라테스 학파 : 키니코스 학파 (κυνισμός, 견유학파) (0) | 2024.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