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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글

쾌락주의의 역설과 쾌락 쳇바퀴 이론

by 구도은자 2024. 4. 26.

 

 

이 글 이전까지 고대 그리스의 소 소크라테스 학파의 대표적 학파인 쾌락주의 학파로 키레네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의 대표적인 사상 및 철학자들의 독특한 개별 사상들을 많이 알아봐 왔습니다.

이들의 이론을 공부하다 보면, 모든 분야의 철학이 그러하듯이 이들의 사상에도 많은 딜레마나 역설이 존재합니다.  이런 문제들은 비교적 근현대의 철학자, 심리학자 들에게서도 중요한 논의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2가지의 예를 들어드릴까 합니다.

 

쾌락주의의 역설 (Paradox of Hedonism)

 

쾌락주의의 역설 (Paradox of Hedonism)
쾌락주의의 역설 (Paradox of Hedonism)

 

먼저 '쾌락주의의 역설 (Paradox of Hedonism)' 을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이 역설은 당시의 쾌락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많이 논의되었고, 쾌락주의의 비교적 반대 포지션인 금욕주의 학파들에게서도 좋은 공격의 먹잇감이 되었던 역설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쾌락을 추구하면 모든 인간이 행복해지고 따라서 궁극적으로 선한 결론에 도달한다는 쾌락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쾌락만을 추구하며 살게 되었을 때, 그것이 도리어 그들의 입장과 정반대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반드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중독과 익숙해짐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담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흡연이란 행위는 순간의 잠시 지속되는 쾌락을 가져다 줄 수 있다. 
키레네 학파를 위시한 감각주의 쾌락주의자들의 의견에 따르자면, 흡연의 행위는 감각적 쾌락을 주는 것이므로 좋은 것 (선한 것) 이고, 이는 계속해서 추구해야 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명백하게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 행위의 반복은 결국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흡연을 반복한 사람은 폐암같은 질병에 걸려 사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마약 남용이나 식욕에 의한 과식 등 수없는 예를 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절제 없는 쾌락의 추구는 오히려 결국 자신을 망가뜨리게 될 것입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힘쓴 것이 같은 쾌락주의 철학사조인 에피쿠로스 학파였습니다.

그들은 키레네 학파의 직접적인 감각적 육체적 쾌락에서 벗어나 그 자리를 정신적 쾌락으로 대체함으로 위의 역설을 이론적으로 타파합니다.

 

쾌락의 쳇바퀴 (Hedonic Treadmill)

 

쾌락의 쳇바퀴 (Hedonic Treadmill)
쾌락의 쳇바퀴 (Hedonic Treadmill)

 

사람은 모든 감각에 감감 적응이라는 기전이 작동합니다.  예를들어 사람이 속옷을 입을 때, 입는 그 순간에는 옷이라는 천이 내 살에 닿아 붙어있는 감각을 느끼지만, 잠시만 있으면 옷을 입었다는 감각을 느끼지 않고 생활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철학자들은 쾌락에도 쾌락 적응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파생된 이론이 쾌락의 쳇바퀴 이론입니다.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관계없이 시간이 흐르면 행복을 느끼는 수준이 원래대로 돌아간다고 하는 이론입니다.

 

최신 전자기기를 구매한 사람도, 복권 1등에 당첨된 사람도, 어려운 시험에 합격해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도...
모두가 그 사건이 일어난 지 몇달내에 그 쾌락의 정도에 적응하여 다시 쾌락의 척도가 덤덤한 상태로 돌아가 새로운 동기부여나 목표의식이 필요해지는 시점이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은 계속 쳇바퀴 돌듯이 무한히 새로운 쾌락을 원하게 마련이라는 것이고 동일한 수준의 만족을 느끼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더 많은 자극을 갈망하게 된다는 것 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신적 성찰을 통한 만족이라는 정신적 쾌락을 이용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