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 1권 중 트라시마코스와 소크라테스의 논쟁 부분
1 라운드 : 케팔로스, 폴레마르코스 부자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 축제구경을 갔다가 우연히 폴레마르코스를 만나 그의 집으로 초대를 받게 되는데, 그의 아버지 케팔로스는 아테네에서 유명한 부호였고 나름 상당히 명망이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케팔로스는 다른 명사들처럼 인사치례로 "자주 못만나서 서운합니다." 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명망은 대부분 그의 부에서 기인한 것이었기 때문에, 초대받은 입장에라 소크라테스는 인사말을 건냅니다.
"나이가 들어 노년에 이르르셨는데 근래 삶이 어떠십니까?"
그러자 케팔로스가 대답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젊은 시절의 즐거움 (성적쾌락이나 술, 잔치 등) 을 아쉬워하고 그런 것들의 상실을 한탄하면서 노년에 겪게 되는 여러 곤경들의 탓을 노령에 돌리지만, 정작 탓해야 할 것은 자신의 생활 방식 (tropos) 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년에 이르면 광포한 주인과도 같던 온갖 욕망들로부터 벗어나게 되어 오히려 큰 평화와 자유가 생기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소크라테스가 누구입니까? 비꼬기와 반박의 대가이신데, 이 말을 듣고 그냥 넘어갈 수 없죠.
"사람들은 당신이 노년을 수월하게 지내시는 이유가 당신이 가진 재산 때문으로 생각할 것 같은데... 재산을 가짐으로써 자연스레 덕을 얻게 되는 것 중 어떤 것이 가장 좋은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케팔로스가 약간 기분이 상했지만 예의상 대답합니다.
"아무래도 재산이 충분하면, 남을 속이거나 기망하지 않게 해주는 면도 있고, 신에게 재물을 빚지거나 남들에게 재물을 빚진 채로 저승으로 떠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없애주는 안도감이 있겠지요."
여기서 뜬금없이 다시 소크라테스의 주특기인 주제 돌려끼우기가 시전됩니다.
"아주 훌륭한 말씀이십니다. 케팔로스님! 하지만 바로 이것, 즉 정의(dikaiosynē)를 정직함과 남한테서 받는 것을 갚는 것이라는 식 (정직과 채무의 이행) 으로 단순히 (무조건적으로) 말할 것인지요, 아니면 이런 걸 행하는 것도 때로는 정의롭지만, 때로는 정의롭지 않다고 말할 것인지요?"
즉, 다시 말하면 무조건 정직한 것과 채무를 반드시 그대로 값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냐를 물은 것입니다.
나중에 트라시마코스도 지적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마치 동양의 공자님처럼 거의 모든 대화가 물음입니다. 본인의 대답은 거의 없죠. 그러면서 갑자기 논의 주제를 '정의' 로 바꾸어 버립니다.
그러자 이번엔 참지 못하겠다는듯이 아들 폴레마르코스가 대신 대답합니다.
"저 고명하신 시인 시모니데스께서 '각자에게 갚을 것을 갚는 것이 정의롭다' 라고 하신 적이 있으니 아버님의 의견도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폴레마르코스는 자신의 권위가 크지 않으니 유명한 시모니데스의 권위에 기댄 의견을 낸 것이죠.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그냥 넘어갈 리 없죠.
"누군가가 황금을 맡긴 사람에게 그걸 되돌려 준다고 할 때, 만약에 그 되돌려 줌과 받음이 해로운 것으로 된다면, 더구나 돌려받는 쪽과 돌려주는 쪽이 서로 친구 사이일 경우에는, 그가 갚을 것을 갚는 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오. 당신은 시모니데스가 이런 뜻으로 말한 걸로 보지 않겠죠? 그렇다면 시모니데스는 정의로운 것이 무엇인지를 말함에 있어서 시인처럼 암시적으로 말한 것 같소. 그는 각자에게 합당한 것을 갚는 것, 이것이 정의로운 것이라 생각하고, 이 합당한 것(to prosēkon)을 갚을 것(마땅한 것)이라고 일컬은 것 같으니까 말씀이오."
약간 해석이 애매하지만, 쉽게 말하자면, 어떤 경우에는 받거나 빌린 물건을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 타당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 친구 사이에는 돈을 빌려주면서 금액의 상환 그 자체보다는 그저 우정과 신뢰를 그 답례로 더 바랄 수도 있는데, 단순히 돈만을 바로 갚아버렸다고 그것이 '합당한 것' 을 갚았다고 할 수 있는가? 혹은 정신병이 걸린 친구에게 칼을 빌렸다고 했을 때, 누가 봐도 이 친구에게 칼을 돌려주는 것은 그에게 범행을 저지르게 유도하는 꼴인데 그것을 다시 돌려주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하는 논박이죠. 그리고 시모니데스의 말의 의미는 그런것까지 고려한 단순한 시적압축 암시인데 멍청한 폴레마르코스 너가 그런거까지는 생각못하고 말하는 것 아니냐? 라고 시모니데스의 권위는 인정해 주면서 폴레마르코스를 돌려까버린 것이죠.
그러자 갑갑해진 폴레마르코스는 논조를 약간 수정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선량하다고 생각(판단)될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선량한 사람을 친구로 규정하자는 겁니다. 반면에, 선량하다고 생각되긴 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자는 친구로 생각되긴 하나 실은 친구가 아니라고 말씀입니다. 그리고 또 적에 대해서도 똑같은 규정(thesis)이 적용되겠고요. 그러니까 당신은 우리더러 처음에 우리가 친구에겐 잘 되게 해 주되 적한테는 나쁘게 되게 해 주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라고 한 그 ‘정의로운 것’(to dikaion)의 의미 규정에다 덧붙일 것을 당부하는 게로군요 이제 이 규정에다가 이런 식으로 즉 실제로 좋은 친구는 잘 되게 해 주되 실제로 나쁜 것은 해롭도록 해 주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라 고 덧붙여 말하라고 당부하는 거겠죠?"
즉, 여기서 폴레마르코스는 자신이 친구라는 것에 대한 가정을 너무 러프하게 잡았던 것 같으니 조금 수정해서 좋은 친구와 나쁜 친구를 구분하여 좋은 친구에겐 좋게 돌려주고, 나쁜 친구에겐 나쁘게 돌려주는 것이 소크라테스 당신의 생각에 합당한 것이냐고 되묻는 것이죠.
별것 아닌 것 같은 되물음이지만, 사실 이 문장은 조금 당시 그리스 상황을 살펴서 같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권력을 이어받아 폴레마르코스 역시 정치 경제적으로 꽤나 높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치자면 정치 9단 아버지의 뒤를 이어받은 2세 국회의원 정도의 포지션으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폴레마르코스가 말하는 좋은 친구란 결국 정치적 의견이 같은 다른 정치인들이고, 나쁜 친구 즉, '적'이란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정치인들을 빗댈 수 있는 것이죠. 이렇게 대치하여 생각하면, 폴레마르코스의 발언은 사실 '제가 같은 당원에겐 항상 잘해주고 은혜를 갚으며, 반대 당원에겐 핍박이나 박해로 돌려주면 되겠습니까?' 라고 되물은 것이나 다름 없는 것입니다. 폴레마르코스의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친구란 '민주정' 을 의미하고, 적이란 '과두정치' 를 의미하는 것이라 판단됩니다.
폴레마르코스가 정치5단 쯤 된다면, 소크라테스는 철학 9단이죠. 그 의미를 이미 파악하고, 다음과 같이 대답해 줍니다.
"친구와 적은 완벽히 구분할 수 없다. 친구를 적이라 생각할 수 있고, 적을 친구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또 친구였다가 적으로 돌변할 수도 있고 적이 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섣불리 어느 한편을 들었다가 문제될 수 있으니, 일부러 한발 빼면서 어쨋든 너의 생각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그것은 정의구현의 방법이 될 수 없다고 한발 빼면서 돌려말해 피하는 모양새입니다.
사실, 현재를 봐도 특정 당이 여당이 되거나 득세하면, 그동안 도움주었던 다른 당원들이나 관계자들에게 당연한 듯 이권과 향응을 거리낌없이 주는 작금의 정치판을 보면 폴레마르쿠스의 구상이 문득 생각납니다.
어쨋든 국가편에서 케팔로스, 폴레마르쿠스 부자와의 대화는 적당히 마무리됩니다. 문맥상 당연히 소크라테스의 승리라고 생각할 수 있죠. 하긴, 일개 지방 정치인이 철학자에게 말싸움을 어찌 이기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뜬금없이 트라시마코스가 대화에 끼어듭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그 역시도 식객으로 있었거나 혹은 소크라테스처럼 명사 손님으로 초대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플라톤이 따로 써놓질 않았으니...)
이것은 또 이것대로 길어지니 다음편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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